그냥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하고픈 순간들이 많아졌다. 그냥 지금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나누고 싶은 이 순간.
그렇지만 동시에 혼자 떠드는 꼴이 될까봐 전화기를 애써 외면한다.
뭐 사실 전화할만한 사람이 없기도 하고 ㅋㅋㅋ

오늘 지하철에서 졸려보이는 남자친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여자를 보았다.
자그만치 기형도 정외과 선배님의 심오한 시를 읽는데,
그 여자분의 오빠 나머리예뻐? 가 너무 크게 들려서..사실 더이상 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나 해야하나 ...

여자분은 예뻤다! 길게 염색한 머리를 아주 정성스럽게 고데기질하고(그 웨이브는 셋팅으로는 절대 나올수없는 머리)
고데기한 끝부분과 대조적으로 윗쪽부분은 참한 머리.... 적어도 아무리 숙달되었어도 1시간은 족히 걸렸음이 틀림없다.

근데 남자친구는 여자가 말을 한 후에야 머리를 힐끗 보고는 그냥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응 예뻐, 이 말이 그렇게 어려웠나. 한번 해주지 안쓰럽구로.

여자는 끊임없이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기대고 자신의 내일일정이라며 핸드폰을 꺼내어 끊임없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남자의 눈은 이미 감긴 상태. 이런말하면 참....그렇지만, 겉으로 보기엔 여자가 훨!씬! 아까웠다. 그러나,
이미 상호간의 태도 자체가 일종의 권력관계를 보여준다고 해야하나.....암튼 그 여자가 매우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동시에 남자의 눈을 감고자 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그 매커니즘도 충분히 공감되었다. (여자는 말이 너무 많았고, 다 자기 자신에 대한 말뿐이었다, 남자에게도 남자가 하고픈말이 있냐고 좀 물어봐주지.)

어쩌면 처음엔 그 남자가 여자에게 죽자사자 매달렸을지도 모르는 일이고(뭐사실반대일수도있겠지, 언제나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지레짐작하는 것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둘이 곧 죽어도 못 헤어질것처럼 붙어다닌 커플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랑이 변하는건... 뭐 한순간이니깐.  

어쨌든 그 커플을 보면서 생각한건 특히 그 여자분을 보면서 생각한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였지만..(굉장히 시니컬하고 도도하게)
 집에 오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저러지 말야야겠다고 생각한것은 내가 충분히 저럴만한 사람인걸 스스로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기 싫음에서 발로된 생각이었다. 내 자신을 잃는 것. 즉 그사람에게 나를 헌신적으로 내던지는 것(그 사람에 대한 비이성적인 평가-콩깍지가 눈을 덮는-가 불가능한 그 순간들)이야말로 내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인데.. 사실 이것이야말로 연애관계의 핵심아닌가. 이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니깐. 그렇지만, 이 다음단계를 위해서, 즉 사랑이 있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가기 위해서는  콩깍지를 벗겨내는, 현상타파적 의지가 필수적이다. 막연한 낭만에서 벗어나는 것. 하....

결국 나에게 누군가의 손을 덥썩 잡을 만한 용기는 앞으로도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약간은 슬프구만.
나의 청춘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안녕 나의 20대 초반(20,21,22)아. 미안.

어쨌든
지하철에서 만난 그 커플은 내 옆을 지나서 열린 문을 통해 빠져나갔고, 아마도 결혼 예단을 보러가는 길인듯 했다.

결국 결혼이란게 그런 관계에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뭐 이게 현실이라면 담담하게 받아들여야지,
만 어쨌든..... 남산도서관을, 그 별것도 없다는 높은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서 방문해봐야지.

덧글

  • 2010/10/23 22:1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ue 2010/10/24 00:20 #

    별거없다고 강력히 나에게 어필했던
    J모군과 K모양...
  • warhol 2010/11/17 05:22 # 답글

    요즘 글을 통 안쓰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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